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재구성이다(Memory is not stored, but reconstructed), 우리가 믿는 기억이 자주 틀리는 과학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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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를 정확히 기억해.” 하지만 과학은 이 말에 고개를 갸웃합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사진처럼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바뀝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틀린 기억을 그렇게 확신에 차서 믿게 되는 걸까요?


뇌는 기억을 ‘보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파일처럼 저장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뇌에는 기억을 그대로 보관하는 저장소가 없습니다. 대신 기억은 여러 감각 정보, 감정, 상황 단서들이 분산되어 저장됩니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뇌는 이 조각들을 다시 조합합니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감정, 가치관, 최근에 접한 정보가 자연스럽게 끼어듭니다. 즉, 기억은 꺼낼 때마다 조금씩 수정됩니다. 이것이 기억 왜곡의 출발점입니다.


감정은 기억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왜곡한다

강한 감정은 기억을 더 오래 남게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억을 더 주관적으로 만듭니다. 분노, 공포, 슬픔 같은 감정은 사건의 세부보다 감정에 부합하는 장면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도 각자 전혀 다른 기억을 갖게 됩니다.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기억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가 됩니다.


뇌는 빈칸을 그냥 두지 않는다

기억이 불완전하면 뇌는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뇌는 그 빈칸을 자연스럽게 채워 넣습니다. 이때 사용되는 재료는 상식, 경험, 주변 이야기입니다.

이 현상 때문에 사람들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기보다, 확실하지 않은 기억을 확신으로 바꾸는 선택을 합니다. 뇌에게는 틀린 기억보다, 그럴듯한 기억이 더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반복해서 말할수록 기억은 더 바뀐다

놀랍게도 기억을 자주 떠올릴수록 정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사건을 다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기억했던 기억을 다시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 바뀐 기억은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강화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도 진짜처럼 굳어집니다.


기억 왜곡은 약점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은 단점처럼 보이지만, 진화적으로는 장점이었습니다. 인간은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뇌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저장하기보다, 앞으로 도움이 될 방식으로 요약하고 재구성합니다. 그래서 기억은 사실보다 교훈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기억을 너무 믿을 때’ 생긴다

기억 왜곡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기억을 절대적인 증거로 믿는 태도입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오해, 다툼 중 상당수는 “내 기억이 맞다”는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과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억은 증언이 아니라 해석이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기억을 더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확신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습니다.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산물이다

우리가 떠올리는 기억은 과거의 복사본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의 나, 지금의 감정, 지금의 관점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같은 사건도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기억이 변한다는 것은, 우리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기억보다 중요한 것

중요한 것은 기억을 정확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입니다. 기억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더 유연해지고 더 지혜로워집니다.

기억은 진실의 기록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도 조용히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도한 쭌냥이

전반적인 과학 분야와 엔지니어링 분야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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